2023 청년하람 일본 선교 미야기현에 대해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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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계단


[그림 1, 2] 309계단
계단의 끝에는 ‘크루스관’이라 부르는 건물이 위치한다. (여기서 크루스는 십자가(cross)을 일본 발음으로 적은 것)
중간 지점에는 옆으로 돌아서 올라갈 수 있게 해 놓았는데, 계단의 전체적인 모습이 ‘십자가’의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309계단은 이 지역에서 순교한 크리스천 수이며, 중간중간 14처가 있다.
(14처란,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실 때까지의 수난을 14단계로 나눈 것)
크루스관


[그림 3, 4] 크루스관 외부와 내부
309계단 정상 도착 시 종탑이 보이고 그 맞은 편에 ‘크루스관’이 있다.
크루스관의 내부는 1,2층으로 되어있다.
성 클라라와 성 마리아 막달레나 흉상, 방명록 등 감상할만한 것들이 있다.
120명의 마지막 순교지


[그림 5, 6] 120명의 마지막 순교지 표지판
120명은 믿음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희생의 길을 선택하여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또는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전해진다.
‘신앙을 버려라! 버려라!’ 라고 강요하면서 가하는 심한 고문 속에서도 한 사람도 배교하지 않았다고 한다.
120명의 사체는 40구씩 3군데로 나뉘어 매장되었으며, 위정자는 사체가 부활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무덤 위에 대량의 돌을 쌓아 올리게 했다고 전해진다.
호쿠산바라
[그림 7, 8, 9] 호쿠산바라
일제시대인 도쿠가와 막부 시기에는 전국적으로 기리시탄(가톨릭 신자) 탄압이 심각해지고, 동북지방의 여러 지역에서도 감시와 박해가 심해졌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요네자와 영주 우에스기 가게카츠는 막부의 금교령을 거부하고 종교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동북지방으로 몰려와 요네자와에 거주하게 되어 신자 수가 1만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영주가 사망한 후 요네자와에서도 기리시탄에 대한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막부의 금교령을 엄격히 따를 것을 주장하는 세력과 관용적인 태도를 취한 세력 사이에 내부 분열과 대립이 심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리시탄 가신과 신자들을 색출하여 배교를 강요했으며, 거부한 신자들은 사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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